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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영화 리뷰] '틱틱붐' 넷플릭스로만 보기엔 아까운 뮤지컬 수작

by black_coffee 2021.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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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뉴욕, 이제 30살 생일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존(앤드류 가필드 분)은 낮에는 식당 웨이터로 일하면서 뮤지컬 작곡가의 꿈을 키우는 열혈 청년이다.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브래들리 휫포드 분)이 서른살도 되기 전 명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탄생시켰던 것과 자신의 현실을 비교하면서 스스로에 채찍질을 가하던 존에게 신작 워크샵 기회가 찾아왔다.  여기서 좋은 반응을 얻고 제작 투자자들의 든든한 후원을 받게 된다면 그는 꿈에 그리던 브로드웨이 무대 위에 자신의 작품 <슈퍼비아>를 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녹녹치 않았다.  연인 수잔은(알렉산드라 십 분)뉴욕의 반대편 지역에 새 직장을 얻었고 22년 지기 친구 마이클(로빈 드 헤수스 분)은 결국 뮤지컬의 꿈을 접고 고액 연봉을 주는 광고회사에 취직했다. 반면 전기료마저 밀린 존으로선 워크샵 공연에 필요한 연주자 구하기도 빠듯한 상황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투자 제작자들에게 들려줘야 할 공연의 핵심 곡은 아직 완성조차 되지 않았다.  앞날에 대한 불안감과 현실의 중압감은 그에게 "탁, 틱" 이명 현상까지 일으키게 만들었고 신경 과민에 빠진 존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한다.

틱틱붐...뮤지컬 '렌트' 조너선 라슨의 유작 영화화​

2021년 11월 19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새 영화 <틱, 틱...붐!>은 조너선 라슨(1960~1969)의 동명 뮤지컬을 영상으로 옮긴 작품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조너선은 <렌트> 이 작품 하나로 국내 뮤지컬 팬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작곡가였다.  'Seasons Of Love'를 비롯한 수많은 명곡들이 보는 이들의 마음 속을 파고 들었던 <렌트>는 오랜 기간 브로드웨이를 비롯한 전 세계 극장가를 누비면서 사랑받았고 그 결과 토니상, 퓰리쳐상을 휩쓰는 영광이 조너선과 작품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너선은 1996년 <렌트> 초연의 오프닝 전날 뇌동맥류 파열로 세상을 떠났고 일생일대의 역작이 무대에 올라가는 걸 끝내 지켜볼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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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 틱...붐!>은 그가 남긴 또 다른 작품 중 하나로 1990년 혼자 등장하는 1인극으로 구성되었다.  <보호 데이즈>라는 제목의 워크샵 공연으로 만들어졌다가 그의 사망으로 사장될 뻔한 작품을 안타깝게 여긴 친구들에 의해 재공연이 기획되었다.  우리 영화 <시월애> 할리우드 리메이크 <레이크 하우스>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한 데이빗 어번의 손을 거쳐 1인극 대신 존-마이클-수잔 등을 맡은 3명의 배우가 다른 역할까지 담당하는 3인 다역 형태로 각색되어 2001년 지금의 형태로 다시 무대에 올려졌다.  ​

한국에서도 여러차례 공연되면서 조너선 마니아 및 뮤지컬 팬들에겐 친숙한 <틱, 틱...붐!>이 영화로 옮겨질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린 미란다-마누엘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뮤지컬 <해밀턴>, <인 더 하이츠>, 영화 <메리 포핀스 리턴즈 등을 통해 젊은 거장으로 각광받는 배우이자 작곡가인 그가 이 작품을 자신의 영화 감독 데뷔작으로 선택했고 넷플릭스의 투자 속에 작업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소극장 무대와 현실 세계의 결합...경쾌한 피아노 록큰롤의 물결

​그런데 <틱, 틱...붐!>의 촬영은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으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촬영 시작 한달만에 펜데믹 확산 속에 제작은 중단되었고 수개월이 지나서야 재개할 수 있었다.  지난 15일 국내 취재진과 온라인 간담회를 진행한 마누엘 감독도 이 부분을 언급하면서 지난 난관 속의 과정을 회고하기도 했다.  아직 백신도 없던 터라 보건 전문가들의 지침 속에 조심, 또 조심을 거듭하며 어렵게 촬영을 끝마칠 수 있었다.​

영화는 7인 구성의 밴드가 소극장 무대 위에서 펼치는 공연을 중심으로 월세방, 식당 등 존의 현실 세계를 차례로 넘나들면서 노래와 이야기를 들려준다.  애초 1인극으로 시작되었음을 감안할 때 이와 같은 방식은 주인공 존의 고단한 삶을 관객들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평소 엘튼 존, 빌리 조엘, 더 후(The Who) 등으로 부터 음악적 영향을 크게 받았던 만큼 <틱, 틱...붐!>에선 타격감 강한 피아노 연주('30/90')가 전반적인 분위기를 지배한다. 

화면 속 그의 선반에 꽂혀진 제쓰로 툴, 데이빗 길모어(핑크 플로이드), 주다스 프리스트의 카세트 테이프 처럼 경렬한 하드 록을 연출('Johnny Can't Decide')하는가 하면 때론 건반 선율이 감정선을 지배하는 발라드('Come To Your Senses', 'Why')가 영상 밖 세상으로 울려퍼진다.  이 과정에선  이렇다한 가창 경력이 전무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앤드류 가필드가 기대 이상으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나약한 고교생 피터 파커, 또는 신념 때문에 집총을 거부했던 병사 데스몬드(<핵소 고지>)를 뛰어 넘는 명연을 펼친다.  여기에 팝 가수 겸 배우 바네사 허진스 등 동료 출연진들의 멋진 가창력은 앤드류의 연기에 큰 힘을 보태준다.

AIDS의 공포 vs 코로나의 두려움...그래도 희망은 있다.​

지난 2006년 야심차게 제작된 극장판 <렌트>가 산만한 구성으로 인해 혹평, 흥행 실패 등의 결과를 맞았던 것과 비교해보자면 <틱, 틱...붐!>은 원작 뮤지컬의 분위기를 가능한 살리며 1990년의 분위기와 2021년의 지금 현실을 묘하게 대비시키며 작품에 대한 흡인력을 키워준다.  30년전 뉴욕은 당시 젊은 예술가들에겐 에이즈(AIDS)의 두려움이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

극 중 존이 "지난해 나보다 어린 친구 3명의 장례식을 치뤘다"고 토로할 만큼 에이즈는 그들의 꿈을 꺾는 공포의 존재였다. 북극 유람선 공연에 캐스팅 되었다고 즐거워하던 동료 사이먼은 항체 이상 반응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죽마고우 마이클도 HIV 양성 판정을 받고 어찌할 바 모르는 상황에 놓이고 만다.  이로 부터 30년이 지난 요즘은 코로나의 공포가 뉴욕을 넘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질병의 위협 속에 한치 앞 미래조차 할 수 없는 청년 예술가들에겐 고통 그 이상의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

결국 존은 워크샵 공연에 올린 <슈퍼비아> 제작 꿈을 이루지 못했다.  좋은 악곡들이 있었지만 난해한 이야기 구조는 투자자들의 선택을 이끌어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는 좌절하고 다시 식당 종업원의 일상으로 돌아갔을까?  이후의 과정은 뮤지컬 팬들이라면 익히 잘 아는 내용이 될 것이다.  손드하임의 든든한 후원 속에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는 6년 후 꿈에 그리던 뉴욕 대형 무대에 <렌트>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첫 공연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

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말하지만 존을 비롯한 수많은 청춘에겐 아플 시간 마저 사치에 불과했다.  연인과의 결별, 동료의 죽음 등 정신적으로 자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주위의 모든 것 조차 조너선 라슨에겐 창작의 영감을 주는 대상이 되었다.   이상과 불안한 현실 속 방황하는 젊은이의 실화는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전 세계 뮤지컬 팬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이제 영상을 통해 또 다른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뭔가 길을 잃어버린 우리를 위해 <틱, 틱...붐!>은 바람에 흔들리지만 어둠을 밝혀주는 작은 촛불이 되어준다.   OTT 플랫폼의 작은 화면, 어중간한 음향으로만 감상하기엔 정말 아까운 작품이다.  

[PS] <틱, 틱...붐!>에는 아담 파스칼을 비롯한 <렌트> 오리지널 캐스팅 주역이자 브로드웨이 스타들이 대거 카메오 형식을 빌어 얼굴을 내비치고 있다.  의외의 장면 속 예상 밖 모습으로 나타나는 그들의 발견은 이 작품에 대한 쏠쏠한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꼭 자세히 지켜볼 것을 당부해본다. 

 

틱, 틱...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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